교황 선출이라는 독특한 전통과 의식은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문화적 상징성이 큰 사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작된 두 작품, 이탈리아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와 캐나다-독일 합작 영화 《콘클라베》(2006)는 같은 주제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한 작품은 인간적인 교황의 내면을 통해 제도와 신앙의 괴리를 포착하고, 다른 한 작품은 폐쇄적 공간에서의 정치적 긴장과 권력 구조를 정밀하게 묘사합니다. 본문에서는 두 작품의 설정, 분위기, 주제 의식 차이를 비교하며, 교황 선출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1.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교황의 자리를 거부한 인간
나니 모레티 감독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 이후, 그 인물이 교황직을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멜빌 추기경은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자신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바티칸을 탈출하게 됩니다. 영화는 교황이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보다는, 그 역할을 맡게 된 인간의 심리와 부담을 중심에 둡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신의 대리자’라는 무거운 역할에 대한 인간의 실존적 고민입니다. 멜빌은 고위 성직자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불안, 우울, 책임 회피를 경험합니다. 그는 심리 치료를 받으려 하며, 거리로 나서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사회에서 종교적 권위는 여전히 크지만, 영화는 그 권위의 이면에 있는 인간적 약함과 현실적 괴리를 담담하게 조명합니다. 코미디와 풍자가 결합된 이 영화는 종교 제도의 엄숙함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권위적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불안을 보여줍니다. 교황은 더 이상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노인의 얼굴을 지닌 인물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교황이라는 존재를 신비화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의 무게 속에서 고민하는 인간으로 풀어내면서 종교 제도와 인간성 사이의 균열을 표현합니다. 이는 교황직이라는 절대적 권위에 대한 질문이자,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 해석됩니다.
2. 콘클라베: 권력과 정치의 극한 심리전
반면, 존 베드험 감독의 《콘클라베》는 15세기 후반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실제 역사 인물들과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종교적 의식보다는 정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당시 교황직은 단순한 종교 수장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력이었고, 영화는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주인공은 로마 귀족이자 사제인 로드리고 보르자, 후일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 선출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교황직을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책략, 금전 거래, 협박 등을 동원합니다. 영화는 교황 선출 과정을 ‘영혼을 위한 성스러운 의식’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과 권력 추구가 뒤섞인 복잡한 협상과 음모의 장으로 그려냅니다.
《콘클라베》는 사실성에 기반한 묘사를 통해 교황 선출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권력의 장치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이 영화에서 교황은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권력 정점에 선 정치 지도자입니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인간관계의 미묘한 줄다리기, 그리고 타인의 욕망을 파고드는 언어의 날카로움은 실제 정치 드라마 못지않은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가 내면의 불안을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면, 《콘클라베》는 외부의 권력 투쟁과 체계적 조작에 주목합니다. 후자의 영화는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욕망과 권력의 결탁을 문제 삼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은 교황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서로 다른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두 영화 비교
두 작품은 모두 교황 선출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인간이 절대적 권위와 맞닥뜨릴 때 느끼는 존재론적 두려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교황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인물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직책의 무게보다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된 ‘인간’에 더 집중합니다. 주인공 멜빌은 성직자이기 이전에 연약한 인간으로서 등장하며, 관객은 교황의 이미지가 아닌 한 개인의 고뇌를 통해 제도의 상징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반면, 《콘클라베》는 제도적 구조와 정치의 치열함을 부각합니다. 영화는 교황 선출이 신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계산,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종교 제도가 가진 허상과 모순을 고발하고,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신성함이 어떻게 현실 정치 안에서 왜곡되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이처럼 두 영화는 교황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두고, 한쪽은 인간의 내면에, 다른 쪽은 외부의 구조적 권력에 주목합니다. 하나는 침묵과 고독의 영화이며, 다른 하나는 말과 계산의 영화입니다. 두 작품 모두 교황이라는 존재가 갖는 무게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 방식은 극명하게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절대적 존재에 대한 상대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콘클라베》는 교황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종교, 정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전자는 제도의 권위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후자는 그 제도가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는지를 드러냅니다. 두 영화 모두 하나의 제도를 중심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 군상의 얼굴을 비추며, 관객으로 하여금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권위’가 과연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를 되묻게 만듭니다.
교황 선출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룬 이 두 작품은 단지 종교 영화나 정치 드라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개인 사이의 갈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우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절대적인 것을 꿈꾸지만, 항상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영화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시선으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